1. 이사 전 이야기
이사하기 전 집을 고를 때 아무래도 한창 뛸 아들이 있다보니 층간소음이 걱정되어, 살고 계신 분에게 아랫집 사람들이 어떠한지 꼭 물어보고 다녔었다. 현재 이사 온 집에 살고 있던 세입자가 아랫집 분들 좋으시다고. 시끄럽게해도 엘리베이터에서나 마주치면 주의 좀 해달라 하시지 전화하거나 올라온 적은 없다며. 아이를 다 키우고 퇴직하신 부부가 사는 집이랬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 이 정도만 해도 얼마나 양반이가 싶어 집을 고를 때 참고했더랬다.
2. 입주 청소
입주 청소가 끝나갈 때 즈음하여 잠시 이사갈 집에 들렀었는데 입주청소하시는 분이 연준이를 보더니만. 아고 큰일이네! 아까 아랫집 사시는 분을 만났는데 여기 누가 이사오냐고 묻길래 울 엄마아빠가 사는 줄 알고 그리 이야기했다며(입주청소 업체를 엄마가 예약해줘서 그런가봄). 돌아서면서 오빠랑 흐음... 입주청소 하는 사람한테 올라와서 물어본거 보면 층간소음에 예민한 사람 아닐까 내지는 그동안 시달려서 그렇게 물어보신걸...까...?? 암튼 기분이 초큼 그렇네? 라며 돌아섰....
3. 조공
엄마가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어서 이사 정리되는대로 조공을 바치라고 성화셔서 이사하고 이틀 후인가 과일을 사들고 아랫집을 방문했다. 낮에 벨을 누르니 아무도 없어서 1차 허탕을 쳤고 저녁에 씻기 전에 다시 2차 방문 해보기로.
4. 두 번째 방문
드디어 2차 방문. 뭐 이런 행동에 계획이랄 것도 없지만 내심 혼자 생각에 딩동 누르고
이사왔어요- 어린 아기가 있어요. 최대한 주의시킬게요. 맛있게 드세요 :-)
라고 말하면 그쪽에서
예. 주의해주심 감솨요. 과일 고마워요 :-)
라고 말할 줄 알았다. 일단 구린내는 벨을 누르고 기다렸다가 똑똑 했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았을 때부터. 아직 집에 안들어왔나봐- 올라가서 저녁먹자! 라고 난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오빠가 다시 똑똑 한다. 그러자 이윽고 열리는 문. 장성한 아들이 문을 열어주길래 후다닥 내려가 과일을 들이밀며 할 말을 하려는데. 알 수 없는 아드님 표정. 머쓱? 뻘쭘? 아 뭐라 표현해야하지? 뭔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고선 자기 아부지만 쳐다본다. 뭔가 올 것이 왔다 라는 분위기. 일부러 문은 안 열어주려다 늦게 연 느낌이...
이사왔는데요 아기가 있...
이라고 말하려는데 아랫집 아조씨가 패딩을 껴입으며
아 들어오이소 잘왔네 들어오이소 들어와서 이야기합시더.
코로나 시대에 무슨 넘의 집에 들어가 이야길 한다는건지 싶었지만 상상도 못한 전개라 아...예... 하고 바짝 얼어 따라들어갔다.
5. 아랫집에 들어가다
우선 그 집은 굉장히 중후한 인테리어가 컨셉인 듯 했고 누가 봐도 퇴직한 부부가 살 법한 물건과 가구들이 가득했다. 일단 소파가 어마하게 컸고 티비에는 프리미어 리그 축구 선수들이 한창 뛰고 있었다.
앉으이소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마 잘왔네요. 안그래도 내가 한 번 올라가야하나 싶었는데 진짜 잘 왔네요.
흐음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게 분명해. 뭘 잘못해도 많이 잘못한 너낌 ㅋㅋㅋㅋㅋ 좌식 테이블 한 켠 바닥에 쭈구리고 앉자마자 아저씨는 테이블 중간에 앉아 어깨를 피고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털기 시작했다.
내가 안그래도 누가 이사오나 물었어요. 근데 청소하시는 분이 나이 드신 부부가 산다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얼~~마나 안심을 하고 잠을 푹 잤는지 모릅니다. 내가 그 부동산 중개인도 알아요. 일이 있어서 그 사람이랑 이야기를 했는데 그 사람한테도 누가 들어오느냐, 나이 든 부부가 들어온다는데 맞냐 물었더니 아니 그 사람이 '아닐건데요? 애기가 있는 것 같던데?'라고 카는기야. 그 때부터 마 내가 마 얼마나 짜증이 나고 화가 나던지. 아니 그 집이 지금 전세로만 계속 돌리는 집인거 같은데 전전세입자도 애가 있었고 전세입자도 애가 있었고 세번째도 애가 있다카는데 와 내가 죽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집주인한테 연락할라캤어요.
정말 혼나는 분위기였다. 전전세입자 그리고 전세입자가 어땠을지 나는 모른다. 근데 우리가 욕받이도 아니고... 좀 황당하긴한데 어쨌든 한창 뛸 아이가 있고 이 아저씨가 너무 푸념을 하시니 상황상 니예니예 힘드셨겠어요 최대한 주의를 주겠습니다만 두번 세번 네번 다섯번은 거듭 이야기하고 한껏 조아려야 이 집에서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6. 아랫집 아저씨
우리의 저자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랫집 아저씨의 푸념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내가 원룸 건물 주인세대에 살았어. 근데 불편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여기 옆 아파트에 오래 살다가 여기가 층수도 마음에 들고 리모델링도 되어있더라고. 마 그래서 내가 여기로 왔어요. 근데 이게 윗집이 계속 전세를 돌리는 집인거라. 내가 퇴직을 해서 저 현관문 옆 방에서 공부를 해요. 근데 애가 너무 시끄러우니깐 마 짜증이 확 나는거라. 그래서 내가 몇 번 올라가서 캤어요. 근데 뭐 요즘은 직접 올라가면 안된다며? 근데 난 안 참아요. 경비실 아저씨 통해서 이야기해야된다카는데 경비아저씨는 무슨 죄냐고. 직접 이야기하면 되는거지. 전에 살던 세입자 딸래미가 애가 별나더라고. 여기가 방음이 잘 안돼. 세탁기 물 내려가는 소리, 애 울음 소리, 뛰는 소리 다 들린다고. 그래 서로 주의를 하고 살아야지 잘 오셨어. 우리도 아들 둘 키워서 안다고 애 키울 때의 애로점을. 그래가 우리도 아랫집에 맨날 롤케잌 사가지고 보내고 이사나올 때도 또 사서 인사드리고 그래했어요. 그게 맞아요. 우리도 마 다 그래했고. 우찌됐든 서로 기분나빠하지말고 이야기 하고 소통하고 주의하입시더.
중간 중간 힘드셨겠어요. 예 예 정말 주의를 주겠습니다. 많이 시끄러우시면 직접 연락하셔도 됩니다. 그럼 더 조용히 시킬게요 똑같은 말만 몇번 했는지 모른다.
이제 그만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를 맛보고 싶은데 끊임이 없는 아랫집 아조씨 잔소리... 아줌마랑 아들은 인상이 좋던데 아저씨는 진짜... 뭔 공부를 퇴직하시고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자기 아들들이 다 위에서 일해서 집에 거의 부부 둘이서만 있는데. 이 아들들이 한번씩 내려올 때마다 친구랑 놀다 늦게 들어오면 늦은 시간에 현관문 닫는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겠냐고, 이웃들 불편하겠냐고 자기는 막 뭐라한다면서...(그만큼 자기는 소음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인데 왜 내 윗집은 항상 애들이 뛰어서 날 힘들게 하느냐) 어필을 하시길래
저희 어땠나요? 많이 시끄러웠나요? 여쭤보니
(사실 우리도 윗집 소리가 생각보다 좀 들려서 조심시키고 있던 차였다)
첫날 콩콩콩 거리는 소리, 아침에 특히 다다다닥 거리고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며... 그니까 이정도도 시끄럽다 이거겠지. 그래서 우리의 생활루틴을 알려드렸다. 우린 맞벌이라 낮에 사람이 없을거고 얘도 어린이집을 삼월부터 간다. 그리고 못가더라도 엄마집이랑 번갈아 있을거라서 오래 시끄럽진 않을거다. 그리고 얘는 9시 전에 재우려고 한다.
이렇게 조아렸더니 꽤나 만족해하면서 연준이에게 '야는 좀 순해보이네' 라고. ㅡㅡ^ 아줌마는 머쓱한지 머핀과 매실차를 내오셨지만 입에도 대지 않았고(죄인이 머핀 먹을 자격이나 있나요?) 똑같은 소리 반복하다가 자기 아들 에스케이하이닉스 다닌다고 뻘tmi 방출하시길래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고 느껴져 그럼 20000을 살포시 외쳤다. 10분 가량이었지만 기빨리는 기분. 그 와중에 이천에서 일한다는걸 못알아듣고 인천이요? 라고 되물었다가 이천이라고 쿠사리 먹음...대기업 다닌다고 자랑하는 느낌이었음(자격지심인가?ㅋㅋㅋ 예 저는 상경치 못하고 지방에서 살며 일하고 있는 지방러입니다)
7. 퇴장
우리가 사간 과일은 아주 당연히 조공을 바쳐야 하는 것이 되어버려서 고맙다 잘 먹을게요 말은 생략되었고(호호) 코로나 시국에 첨 보는 모르는 사람 불러다가 자기들은 자기집이라고 마스크도 안하고 그렇게 푸념 십몇분 하는 인간이 아랫집 아저씨(우리만 마스크)
8. 알 수 없는 엄마의 잣대
식어버린 김치찌개를 먹으며 엄마아빠에게 우리가 들었던 그 모든 말을 쏟아내며 이런 일이 있었다, 좀 별로인 것 같다고 평을 내렸더니 아빠는 그러게 좀 별나긴 하다 라고 동의. 허나 평화주의자 엄마는 그런 사람이 쿨하다느니 계속 조공을 갖다바치라느니 뒤끝은 없다느니.
뭔 말이야 싶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울엄마 그냥 내 성질머리 알아서 아저씨한테 들이박아 온 동네에 소문날까봐 갈등을 잠재우려고 그랬나? 쩝쩝
9. 전세입자
그리고 밥을 먹고 정리하며 생각을 다듬어보니 아니 전세입자가 뻥을 쳤나 싶을 ㅋㅋㅋㅋㅋ 자기들 계약기간 덜 채우고 빨리 나가게되서 그랬나. 직접 연락온 적은 없었다 그러더니 왜 서로 말이 다른지.
10. 잔소리의 시작
암튼 그 아저씨 소굴(?)에 들어갔다 나온 이후로 계속 온 신경이 층간소음에 이르러 도움닫기를 하며 껑충 뛰려고 시도하거나 콩콩콩 다다닥 뛰려고 하는 애를 볼 때마다 뛰지마 뛰지마 뛰지말라고를 연발하고 있는 내 모습. 진짜 일분에 몇번씩 말하게 된다더라니 넘의 일이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내 일이 되니 너무 화가 나는 것이다. 이러고 살아야한다니!
11. 두 번은 없다
한 번이니까 내 성격에 조아리고 웃고 넘어갔지.
두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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