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우 이 책 뭐지...?
아무 정보 없이 읽었다고 호되게 당했다.
에세이인 것만 알고 읽기 시작은 했는데-
처음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사람의 전기문인가? 싶다가도 갑자기 자기 이야기를 막 토로하는 일기가 되었다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자서전이 갑툭튀했다가, 그 때의 보도자료를 엄청 인용해오는 다큐멘터리식 진행
그랬다가 인터뷰한, 취재 내용으로 서사되었다가 마지막엔 다시 에세이 형식
그래서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이고 물고기는 왜 없단 말인지 중반까지는 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근데 읽다보니(정확히는 자기 기만에 대한 내용을 넘어서니) 엄청난 반전과 흡입력에 호다다닥 읽기를 끝내버렸다.
이거 정말 중반까지 읽다 포기한 사람들은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완전 잘못 알고있겠다 싶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에 대한 엄청난 집착이 이런 대작을 낳을 수 있구나.
간단요약(스포O)
반복되는 재앙에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물고기를 발견하고 분류하는, 꾸준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데이비드 조던을 보며 작가는 그 힘의 근원을 알고 싶어 조던의 자취를 따라가게 됨. 아버지의 모습과 대비되는,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데이비드를 보며 동경하게 됨. 데이비드의 원천은 그릿이자 긍정적 착각이자 자기 확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후에 미심쩍은 독살의 증거와 우생학의 보급에 앞장 선 모습을 보며 작가는 자기가 존경하고 동경했던 인물이 빌런이라는 걸 알게 되고는 그것이 자기 기만이라고 결론 내림. 심지어 데이비드가 몸바쳐 연구했던 물고기조차 과학적으로 어류라는 범주가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됨.
고래는 사슴과 가깝다는 말에 상당히 나도 충격...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다니. 양서류는 있어도 어류는 없다니...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인간의 모습과 끔찍한 사다리 이야기는 정말 소름끼쳤다. 마지막에 어류라는 있지도 않은 범주를 놓아주는 것에 대한 아버지와 큰언니의 답변으로 끝이 난다.
읽고 난 후, 다른 사람들의 평이 궁금해서(워낙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는 썰은 많이 들었기에) 북튜버 평을 찾아봤다.
책의 형식과 구조가 내용과 조응된다는 해설을 듣고 나니 더 충격적인 느낌.
형식이 여러 갈래로 오가길래 독특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고나.
작가로서 어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지? 여러분- 글을 이렇게 쓰기는 정말 어려워요. 이 작가는 글쓰기 내공이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요- 하는 말이 아직까지도 생각남.
아가시가 충격적이라고 느낄 만큼 인간과 유사한 어류의 골격 구조(작은 머리, 척추골, 갈비뼈를 닮은 돌출 가시)는 '인간'에 대한 경고였다. 어류는 인간이 자신의 저열한 충동들에 저항하지 못하면 어디까지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는지를 상기시키는 비늘 덮인 존재였다. "인간은 어류와 그를 구별해주는 도덕적, 지적 재능을 활용할 수도 있고 남용할 수도 있다. 인간은 자기가 속한 유형 중 가장 낮은 위치까지 가라앉을 수도 있고, 영적인 높이로 올라갈 수도 있다.
45-46쪽
데크 아래 솔잎들이 쌓인 땅을 가리키며 아버지가 말했다. "너한테는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걸. 좀 더 클 수는 있겠지만 더 중요하지는 않아."
55쪽
나라면 이 지점에서 포기했을 것이다. 신성이 훼손되고. 꿈이 박살 났으며, 수십 년 동안 끈기 있게 해온 일이 헛수고로 돌아갔다면, 나라면 지하실로 내려가 패배를 인정했을 것이다.
113쪽
나는 절박했다. 단순하게 말하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책에서,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가는 일을 정당화하는 그 정확한 문장을 찾아내는 것이 내게는 절박했다.
120쪽
그러면 나쁜 나날을 보내고 있으면 어떻게 하라는 걸까? 데이비드는 나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동정심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절망의 철학>의 최종 결론은 절망이 선택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절망이 청소년기에 자연스럽게 거쳐 가는 단계라고 생각하기는 해도 그런 감정을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명한다.
127쪽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건 왜 그러는지에 관한 집착이야"라고 나는 말했다. "한 사람을 계속 나아가도록 몰아대는 건 뭘까?"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불렀어.
130쪽
어쩌면 진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은 "우리는 실제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141쪽
그릿(Grit). 끈질김을 뜻하지만 그보다 귀에 착 붙는 단어, 그릿. "긍정적 피드백"이 없는데도 "매우 장기적인 목표"에 로봇처럼 뛰어들게 해주는 것, 그릿. 머리로 벽을 반복적으로 들이받을 수 있는 능력. 재능, 창의력, 친절함, IQ는 다 잊어라. 순수한 그릿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바로 그것인 것 같았다. 실패와 역경, 정체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노력과 흥미를 유지하는 것 말이다.
그러면 어떤 인지적 결함이 그릿을 획득하는 데 도움이 될까? 바로 긍정적 착각이다. 긍정적 착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촤절을 겪은 뒤에 낙담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42-143쪽
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나의 괴상한 애착과, 그가 내게 살아가는 방법을, 내가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내 인생을 되돌려놓을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관해 골똘히 생각했다. 그에게는 내가 존경할 만한 많은 면들이 있었다. 그의 냉소. "숨어 있는 보잘것 없는" 꽃들에 대한 그의 몰두. 내 아버지의 쇠솔로 된 밀대 빗자루를 연상시키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팔자수염. 그의 강철 근성. 그 어떤 불운이 자기 앞에 닥쳐와도 주저앉기를 거부하던 그 투지 넘치는 결연함.
171쪽
다윈은 <종의 기원>의 거의 모든 장에서 "변이"의 힘을 칭송한다. 그는 다양성이 있는 유전자 풀이 얼마나 건강하고 강력한지, 서로 다른 유형 개체 간의 이종교배가 그 자손에게 얼마나 큰 "활력과 번식력"을 만들어주는지, 심지어 완벽하게 자기 복제할 수 있는 벌레들과 식물들까지도 새로운 변이형을 만들어낼 수 있게끔 유성생식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사실들은 정말로 이상하구나!"하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가 지구의 수많은 생명들의 순위를 정하지 말라고 그토록 뚜렷이 경고한 이유는 "어느 무리가 승리하게 될지 인간은 결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188쪽
데이비드는 <당신의 가계도>라는 우생학 선언서에서 "교육은 결코 유전을 대체하지 못한다"고 단언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 문제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아랍의 속담이 하나 있다. '아버지가 잡초이고 어머니가 잡초인데 딸에게 사프란 뿌리가 되기를 기대하는가?'
190쪽
오싹했다. 그 잔인성과 무자비함이. 그 추락의 무지막지한 깊이와 그 파괴적 광란의 크기가. 토할 것 같았다. 내가 모델로 삼으려 했던 자는 결국 이런 악당이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이성도 무시하고 도덕도 무시하고, 자기 방식이 지닌 오류를 직시하라고 호소하는 수천 명의 아우성도 무시해버린 남자.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 몰두하고 관심을 기울이던 그 상냥했던 소년이, 어떻게 바로 그 숨어있는 보잘겂없는 존재들을 기꺼이 말살하려는 남자가 된 것일까? 그의 이야기 중 어느 지점에서 변한 것일까?
201쪽
페니키스 섬의 헛간에서 루이 아가시가 젊은 데이비드의 정신에 관념의 씨앗 하나를 심어놓는 순간에 다다랐다. 그것은 자연 속에 사다리가 내재해 있다는 믿음이었다. 자연의 사다리. 박테리아에서 시작해 인간에까지 이르는, 객관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는 신성한 계층구조.
203쪽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에게 너무나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242쪽
프란스 드 발은 이것이 인간이 항상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상상 속 사다리에서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와 다른 동물들 사이의 유사성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하는 것 말이다. 드 발은 과학자들이 나머지 동물들과 인간 사이에 거리를 두기 위해 기술적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가장 큰 죄를 범하는 집단이라고 지적한다. 침팬지의 키스를 "입과 입 접촉"이라고 부르고, 영장류의 "친구"를 "파트너"라고 부르며, 까마귀와 침팬지가 도구를 만들 수 있다는 증거에 대해서는 인류를 정의하는 종류의 도구 제작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해석한다. 동물들의 지능을 본능으로 치부한다.
나의 아버지는 "어류"라는 단어를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정확하지 않다는 건 이해하지만 유용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세계를 경험하는 제한된 방식에 자신을 가두게 되는 것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내가 묻자, 아버지는 "아이고, 나는 그게 뭐든, 아직 내가 해방되지 않은 것으로부터 해방되기에는 너무 늙었어."
큰 언니는 물고기를 놓아버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왜 언니한테는 그게 그렇게 쉬운 거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인간은 원래 곧잘 틀리잖아." 언니는 평생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늘 반복적으로 오해해왔다고 말했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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