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아 ::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쁘띠 행복’을 찾기 위한 에세이
간만에 맘에 드는 책을 찾았다. 얇지만 한 문장도, 하나의 이야기도 쉬이 읽을버릴 수는 없는 마음으로 아껴서 또 읽고 또 읽었다. 빵 고르듯 살고 싶다니. 행복 찾으러 빵집 가는 나에게 얼마나 이끌리던 제목이던지. 근데 난 빵순이는 아님.
근데 작가님 말대로 그냥 빈 트레이에 무슨 빵을 담을지, 이 빵이 커피랑 어떻게 어울리지 조합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벅찬 행복감이 느껴지는게 팩트니까. 작가님이 그런 쁘띠 행복의 순간을 정말 잘 캐치해내셨다. 그리고 찰떡같이 글로 표현하심.
팥식빵부터 스트로베리쇼트케잌, 치아바타, 비스코티, 치즈케이크, 까눌레, 식빵, 후르츠샌드위치까지 소 챕터에 작은 이야기들 몇 묶음이 들어가있다. 작가이면서 일러스트레이터 답게 아기자기한 삽화가 눈길을 끈다. 읽다보니 약간 일본 작가의 에세이 같은 느낌도 든다. 삽화도 그렇고. 근데 이게 되게 웃긴게, 너무 왜색이 짙은, 짧은 호흡의 글을 만나면 흐음 하며 책장을 덮어버리는데 이 책은 또 그렇진 않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 색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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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첫 챕터에 바로 나오는 커피'식' 시간은 완전 나랑 같아서 작가님 내 마음 속에 들어갔다 나오신 줄! 같은 마음인데 표현력이 대단하시다.
커피’식’ 시작.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선 언제나 커피가 필요했다. 가장 좋아하는 커피’식’ 시작은 물을 끓이는 일부터 시작하는 핸드드립 커피다. 이 시작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원두를 항상 준비해두는 것은 물론이고, 마실 때 기분 좋아지는 컵을 모으는 것도 디폴트 취미생활. 커피를 내리는 시간은 하루 중 거의 유일한 명상 시간이다. 그렇기에 이 시간으로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루가 끝나가는 동안 말라버린 여과지를 치우는 것으로 오늘의 커피’식’ 시간도 끝이 났다. 오늘 못한 일은 내일의 내가 해낼 것이다. 내일의 커피’식’ 시간 안에서. p23
우리는 같은 집에 살면서도 각자의 공간에서 자신만을 위한 못된 일을 하고 있구나. 엄마는 비싼 치약을 사와서는 나에게 속삭이기도 한다. “이건 우리끼리만 쓰자. 아빠 것은 따로 놔뒀어.” 잠깐, 혹시 이런 면은 엄마를 닮은 건가?
나쁜 일로 하루를 망쳤다고 생각하는 마음에 작은 좋은 행동 하나를 더하는 방법. ‘나쁜 일 - 나쁜 일 = 나쁜 일 없음’은 인간이 이룰 수 없는 공식이지만 ‘나쁜 일 + 좋은 일 = 나빴지만 좋은 일’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공식이다.
‘자 이제 골라봐’의 마법은 이렇게나 대단한 것. 그렇기에 어느 힘든 날 그저 빵 고르듯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나를 이 책을 쓰는 일로 이끈 것이 아닐까.
어쩌면 여행은 떄맞춰 다녀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p100
누군가의 욕을 하거나 누가누가 더 힘든지 서로 비교하는 대회라도 참가한 듯한 대화만 오간다면, 그 관계는 깊어질 수 없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드는 생각은 한결같았다. 왜 ‘우리’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지 못하는 건지, 이야기를 나누려고 왜 노력해야 하는 건지, 노력하면서까지 만날 이유가 있기는 한 건지. p114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대화 속에서 나의 불쾌함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지금 화내도 되는지에 대해 분명히 판단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기가 막히게도 ‘돌아서서 생각해보니 기분 나쁜 말’의 수준으로 내뱉는 말들이 대부분이니까. p116
관계에서 실패를 맛보는 것은 유감스럽지만, 어차피 점점 곁에 가까운 사람이 적어지고 일상이 좁아지는 시기에 서있다. 무리하면서까지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편한 상대 단 몇 명이 확실히 있다는 게 풍요롭다. p117
내 일이 아닌 일로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밤은 이제 없다. 그저 시답잖은 마음으로 내일은 뭘 먹을까, 아침에 바로 작업실에 갈까 아니면 카페에 잠깐 앉아서 어제 읽다만 책을 읽을까. 당장 급한 마감은 없으니 한강문고에 가서 책을 좀 볼까, 돈을 아껴야 하니까 그냥 커피는 내려 마시고 저녁에 외식을 할까 생각한다. 그 와중에 바쁘고 힘든 일은 계속될지라도, 적어도 내일이 오길 바라며 잠들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게 어찌나 놀랍도록 감격스럽던지. p160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날은 분명 있었다. p165
기록은 쉽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는 건 더 쉽기에 언제든 이미 지나쳐버린 마음으로 살게 된다. p180
나도 블로그를 한 떄 열심히 하던 떄가 있었다. 이상한 마음인게, 누군가는 읽어줬으면 좋겠는데 또 아는 지인이 읽는다면 좀 꺼려지는 기분. 열심히 하다가 여러 검색으로 블로그가 털려버리는 바람에 잠시 그 블로그는 쉬고 있다. 그래도 그 때 열심히 적었던 기록들을 보면 20대의 나는, 사회 초년생의 나는 이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구나, 이런 음식을 깔깔대며 먹었구나, 이런 고민이 있었구나 싶은게 기록을 잘 남겨두었다 싶다. 특히나 여행 기록들은 자잘한 에피소들까지 꽉꽉 기록되어 있어서 다시 읽는 내내 흐뭇한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
작가님의 임밥 기록처럼 나도 오늘부터 내가 먹은 음식들을 간단하게 기록해볼까 싶다. 누구와 먹었는지, 그 떄의 나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길진 않아도 짧게라도 남겨보리.
작가님의 <어제 들은 말>이라는 책도 곧 읽어봐야겠다.
“어제 먹은 밥은 기억해도, 어제 들은 말은 기억하지 말아요.”라는 하나의 문장 때문에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